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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직동
팀명 중앙동 등록일 2015-11-30 조회 3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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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이란 왕조의 주권을 이르는 말로 社는 토신(土神)을 뜻하고 稷은 곡신(穀
神)을 뜻하는 것으로 군왕이 등극할때는 사직에 제사를 지내고 나라의 흥성을 제
사지내던 곳을 사직단이라고 하였다. 1920년 지방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읍내
리를 갈라서 남산정이라고 하였다가 1946년해방이 된 다음해에 왜식 동명을 없애
는 행정에 따라 이곳에 있었던 사직단의 이름을 따서 사직동이라고 하였다.

남산(南山) : 사직동의 남쪽 천안시장의 끝에 있다.
936년 고려태조 왕건이 8만 7천 5백의 대군을 이끌고 후백제의 신
검을 토벌하기 위하여 이곳 천안에 머무를 때 태조 곁에 있었던 술
사 "예방"이라는 사람이 천안의 지형지세를 살펴보고 간하기를 오
룡쟁주(五龍爭珠)의 지형이라고 하였다. 오룡쟁주란 다섯 마리의
용이 구술 하나를 놓고 서로 얻으려고 싸우는 지세로 이곳 남산을
구슬(여의주)로 보았다. 남산은 외떨어진 잔구로 어느 산에도 연
결되지 않았고 독립되어 있는 구룡이다. 조선시대는 사직단이 있
어 사직에 제사 지내던 곳이고 일제때는 그들의 신사가 세워져서
많은 시민을 강제로 참배시키던 곳이며 해방후에는 시민공원으로
조성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남산비석가(碑石街) : 해방이전 까지만 해도 남산아래 도로변에 많은 비석이 있
었다.
관찰사 어사 군수의 선정비나 불망비등이다. (약 20여개) 그러나
도로확장과 주택건립으로 지금은 한 개도 없다. 비석이 많이 있었
던 거리라 비석거리라고 하였다.

용주정(龍珠亭) : 남산 위에 있는 정자다. 1963년 지금의 중앙초등학교 앞에 있
었던 천안객사(客舍)가 낡아서 헐고 그 일부를 남산에 옮겨 세운
것이다. 본래 이곳에는 정자가 있었으나 (용주정의 뒤)없어지고
그 자리 옆에 세웠다.

수선정(水仙亭) : 지금의 사직동 15번지에 있었던 정자. 옛 천안의 동헌(東軒)
앞에 있었다. 인위적으로 큰 연못을 파고 목 가운데에 돌로 축대
를 쌓아 섬을 만들고 멀리 유량천에서 물을 끌어대어 못에 물을 고
이게 하고, 고였던 물은 남쪽으로 빠지게 하였다. 못가에는 수선
화를 심어 꽃피게 하였다고 수선정이다. 수선정이 세워졌던 정확
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1988년 중앙시장앞 도로에 전화선 매설공
사를 할 때 수선정의 정자 기둥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8각 돌기둥이
출토되어 구 천안문화원 마당에 보존되고 있다.(영성상회의 주인
이선영씨의 신고)이 돌기둥이 출토된 곳이 수선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지금의 중앙시장 네거리 외환은행 앞의 도로)천안에 있었
던 정자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정자로 알려지고 있다.
※ 왜정 초기에 수선정을 헐어 남산의 남쪽 기슭에 옮겨 세웠으나
그것도 없어지고 지금은 주추만 남아 있다. 이홍복의 기문이 남아
있다.

※ 서릿말(西里)
천안시장(市場)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수도주물공장을 중심으
로 오늘날은 살기좋은 주택지로 가꾸어지고 있다. 천안을 대분하
여 東里와 西里로 구분할 때 불렀던 마을 이름이다. 東里는 지금
의 영성동과 원성동지역을 말하고 반대가 되는 지역을 西里라고 하
였다. 일제때는 솥(釜)을 만드는 솥공장이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
제조공장으로 둔갑을 하였고 일본인들이 한반도에서 본국으로 쌀을
가져가기 위하여 포장용 가마니를 만드는 공장도 이곳에 있었다.
최근에는 시장이 형성되고 국도가 통과되며 경부선철도가 지나면서
급속히 발달된 마을이다.

사직단(社稷壇) : 옛날 조선조때 토신과 곡신을 위하여 제향을 올리던 제단.
지금의 남산위에 있었으며 토신과 곡신을 제사 하였음은 국가의 번
영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 것으로 군수가 주제하였다. 사직단은
일제에 의하여 헐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일인들의 신사가 세워졌다
가 해방후에는 용주정이 세워졌다.

온양나드리 : 천안에서 온양으로 가는 길목을 말한다. 이 길을 통하여 서산, 당
진으로 통하였고 태안반도 일대로 갈 수 있었다. 조선왕조의 왕실
들도 이 길을 통하여 온양에 행제하였다. 지금은 경부선철도 가로
막혀서 지하도가 설치된 뒤로는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잿백이(작은 잣백이) : 온양나드리 지하도에서 사직동 시장으로 넘어가는 고개.
대흥동과 사직동의 경계가 된다.
재는 峙로 고개를 뜻하는 것이고 배기는 마루턱을 말한다.
천안의 동서 관통로로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으며 상점이 집중되어
있어서 상권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낙천관골(樂天館谷) : 천안극장 앞 광제의원 옆에 일제때 낙천관이라는 요리집이
있었다.
천안에서는 가장 큰 술집으로 경향각지에 이름이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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