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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삼태리
팀명 풍세면 등록일 2015-11-30 조회 2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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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군 원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삼태리 학계리 원당리가
병합되어 삼태리라 하고 풍세면에 편입되었다.

삼태리 : 고려대 전성안(全成安), 이승인(李崇仁), 전윤장(全允藏) 재상이 나왔
으므로 삼태리라 하였다고 한다.

산신제 : 금호부락에서 산신제를 올리는데 동짓달 섣달중에서 택일하여 길한 날
로 정하고 생기복덕을 보아 닫는 사람이 주당이 되어 축관, 보조인과
함께 지내는데 쇠고기, 삼색실과, 떡(3되 3홉)을 제물로 하고 지내며
각호의 소지를 올려준다. 음식을 많이 장만하여 부락민들이 나누어 먹
고 비용은 당일 호당 쌀 한되를 걷는다. 그리고 당일에 한하여 육식을
금하다.

해선암(海仙庵)(태학사) : 원당 남쪽 태화산에 있는 절.
신라때 진산대사(珍山大師)가 창건하여 태학사라 하였다가 그후 해선암
으로 고쳤다 하며 폐사되었던 절을 1931년 이병희(李炳熙)가 꿈의 지시
에 따라 매장된 석불을 파내고 불당을 짓고 광덕사에서 목상 마애불을
옮겨 왔다고 한다.

마애불(磨崖佛) : 석불(石佛). 장군바위 해선암 뒤에 있는 큰바위에 불상을 만들
었는데 높이 7.1m 법의(法衣)의 아래폭에 7.1m다 되며 그 솜씨가 매우
기묘하므로 보물 제407호로 지정 되었다. 처음 만들 때 비바람을 가리
기 위해 바위에 의지하여 세웠던 건물의 흔적이 엿보인다.

산직말(山直) : 합계(合溪), 학계(鶴溪), 그 머리 남쪽에 있는 마을. 산직집이
었었다. 태화산의 두 골짜기 물이 이 마을 앞에서 합치므로 합계라 하
다가 학계가 되었다고 한다.

양흥사(兩興祠) : 그 머리에 있는 사당. 고려 때 벽헌(栢軒), 전신(全信), 남악
(南嶽), 이협(李莢)을 배향하였다. 순조 26 년(1826)에 창건하였는데
고종 5년(1868)에 헐리었다가 1976년에 다시 건립하여 양현사(兩賢祠)라
하였다.

도곡(道谷) : 돗골이라고도 하는데 그 머리 서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그머리(錦湖) : 금열리(檢閱里) 삼태리에서 가장 큰 마을 지형이 게의 머리처럼
생겼다 한다.

원당(元塘) : 그 머리 남서쪽에 있는 마을. 원당이 있었다.

산제 : 원당 부락에서 산신제를 올리는데 정월 초이틀에 지내며 부정한 일이 없
어야 한다. 부정이 있으면 다음날로 연기된다. 생기복덕을 보아 닫는 사
람으로 제관, 축관, 주당(음식을 장만하는 사람)보조인이 되며 날돼지 머
리, 삼색실과, 포, 술(당일 만든 술)을 제물로 놓고 지내며 비용은 부락
재정으로 한다. 당일 부락민의 출타를 금하며 오후 4시경에 지내고 각
호의 소지를 올린다. 제를 지낸 음식은 전 부락민이 같이 먹는다.

전해진송덕비 : 작인들의 소작료를 면해 주어 소작인들이 고마움으로 비를 세워
주었다.

평강채씨의 묘 : 묘가 바다의 게형(해구형)이라 하며 묘아래 묘를 또 써서 머리
를 눌러 놓은 것이 되어 좋지 못하다 한다.
그 머리가 여기서 나온 지명이라고 전해온다.

은고개 : 남관리 가는 고개. 은이 생산되었다고 전한다.

장고개 : 옛날에는 이곳 사람들이 아산군 온양장을 보러 이 고개를 넘어 다녔다.

용가마골 : 옛날에 철을 녹이는 가마 용광로가 있었던 곳이다.

원서면사무소 : 원서면 면사무소가 원당에 있었다.

삼태(들이름) : 이곳에서 삼태사를 낳았다고 하는데 기왓장이 많이 출토된다고
한다.

장터골 : 원당이 위에 있는데 옛날 이곳에서 장이 섰었다고 전하여 온다.

물탕골(절터) : 물탕이 있는데 절 우물이었다고 전한다.

공기바위 : 원당이에 있는데 장수가 공기를 하고 놀다가 흘린 돌이라고 한다.

장자터 : 옛날에 큰 부자가 살았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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