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감성여행

미나릿길 벽화마을로 떠나는 추억여행

미나릿길벽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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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릿길벽화마을

  • 위치 / 천안시 동남구 원성천1길 17 중앙동주민센터

어릴 적, 학교에 가는 게 싫었던 이유 중 하나는 등하굣길 때문이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30분 정도를 걸어야 했는데,
다리가 짧고 몸이 작았던 어린 시절엔 그 비슷비슷한 집들로 이루어진 길이 유독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 긴 동네를 지날 때면 저녁에 봤던 ‘은비 까비’나 ‘드래곤 볼’ 같은 만화 이야기를 떠올리며 지루함을 달래곤 했다.

문득 그 시절의 아쉬움을 동생에게 이야기하니 동생이,
"언니! 중앙동에 재미있는 동네가 있다는데 같이 가볼까? 오랜만에 같이 좀 걸어보자!"
하기에 하늘이 맑은 어느 주말에 미나릿길로 향한다.

다행히 날씨가 완연한 봄 그 자체이다.
푸른 하늘에 연둣빛 나뭇잎이 벌써 기분이 좋게 한다.
귀엽고 친절한 안내판이 우리를 미나릿길로 안내한다.

벽화 동네 밖에는 보노보노, 푸우, 심슨 등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캐릭터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맞이해 준다.

미나릿길에 들어서니 듣던 대로 좁고 긴 골목에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담 넘어 나무에서 이어지는 듯한 커다란 목련이 봄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하며 나의 시선을 빼앗는다.

그 길을 걸으니 옛 생각이 난 걸까. 나도 모르게 동생의 손을 잡고 호들갑스럽게 걷게 된다.

수 년 간 손끝 하나 스치지 않고 지냈던 것 같은데도 별로 낯부끄럽지도 않고 괜히 신이 난다.
서로 손을 이끌며 이 골목, 저 골목을 거닌다.

미나릿길은 골목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골목으로 되어있는데, 골목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길목 길목마다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 이동하면 알찬 골목여행을 할 수 있다.

지금의 알록달록 화사함과는 다르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낡고 허름한 골목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모습으로는 믿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평범하고 복잡한 동네였을 텐데 벽화를 통해 이렇듯 이야기로 가득 찬 동네가 되었다는 것이 참 재미있다.

골목 안의 집마다 그 특색에 맞춰 세심하게 그려진 벽화들이 미나릿길을 더욱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어 준다.

하늘이 있는 곳에는 바다를 그려 맞닿게 하고,

화려한 꽃을 잔뜩 그려 마치 꽃밭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화사하게 동네를 장식한다.

나무와 꽃 그림이 있는 담장 아래 작은 새싹이 피고, 그 배경이 되는 그림과 절묘하게 동화되니 아주 자연스럽다.
마치 틀린 그림 찾기를 하는 듯한 재미있는 기분도 든다.

특히 거리나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입체적인 그림은

마치3D 만화의 한 장면처럼 생동감이 있어 신선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어느 골목을 걷다 보면 갑자기 북극곰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림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 크기와 위압감 때문인지 등골이 오싹해지며 더위가 한풀 꺾인다.

세밀하게 계산되어 그려진 벽화들은 우리에게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듯,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작은 환상을 안겨준다.

그 입체적인 그림을 보고 있자면 불현듯 거기에 맞추어 위치를 잡고 그림에 동화되고자 애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분명히 그림일 뿐인데 왜 판다에게 대나무를 먹이는 척하고 싶어지는 걸까? 착시의 마법은 참 재미있다.

동생과 서로 그 각도에 맞춰 사진을 찍다가 불현듯 쑥스러움이 느껴져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다른 사람들도 모두 당연하다는 듯 이 동네를 그렇게 즐기고 있다.

우리 자매뿐만 아니라 다른 연인, 친구들도 모두 이 쏠쏠한 재미에 푹 빠진 걸 보니 소박한 행복이 어떤 건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벽화 중에는 요즘 보기 어려운, 어느새 과거의 상징이 되어버린 그림들도 많이 있다.

방구차 소리가 들리면 왜 그렇게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집 밖으로 뛰어나왔을까.

동생은 그 하얀 연기 속을 걸을 때 마치 선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며 깔깔거린다.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는 세상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마음의 안식을 찾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돌멩이 하나, 나뭇가지 하나만 있어도 하루 종일 놀 수 있었던 날이 가끔은 그립다.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녀간 건지 꽤 많은 추억이 남겨져 있다.

풀리지 않은 단단함으로 여전히 굳건한 사랑들을 하고 있을까.

느긋하면서도 즐거운 벽화여행을 하다 보니 이 소박하면서도 화려하고,
거기에 유쾌하기까지 한 그림들을 가진 이 마을의 사람들이 조금 부러워진다.

집에 가는 길이, 그리고 학교 가는 길의 발걸음이 아마도 가볍지 않을까.

미나릿길을 나서니 언제부턴가 소원해졌던 나와 동생 사이 마음의 거리가 부쩍 가까워짐이 느껴진다.

외출하더라도 항상 적당히 떨어져 걷곤 했는데, 가까이서 동생의 편안한 웃음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